1부

졸업과 재회

16년 만의 재회 — 죽어가는 교수님과 제자의 마지막 수업이 시작된다

재회 루게릭병 인생 수업

§ 1나의 졸업식

1979년 늦봄, 브랜다이스 대학 졸업식. 파란 가운을 입고 사각모를 하늘을 향해 던진 순간, 우리의 어린 시절은 막을 내렸다. 나는 평소 가장 좋아하던 모리 슈워츠 교수님을 찾아 부모님을 소개했다.

자그마한 체구의 모리 교수님은 청록색 눈동자와 은발, 커다란 귀, 삼각형의 코를 가진 사람이었다. 그는 항상 내게 특별한 인사를 건넸다. "미치가 좋습니다." 그 한마디가 내 대학 시절의 시작이었다.

§ 2생애 마지막 프로젝트

1994년 여름, 모리 교수님에게 사형 선고가 내려졌다. 루게릭병 — 근위축성측삭경화증. 신경이 하나씩 죽어가는 병이다. 먼저 다리가 마비되고, 그다음 팔, 손가락, 마지막으로 호흡 근육이 마비된다.

교수님이 춤을 그만둔 바로 그날이 시작이었다. 어떤 음악이든 상관없이 춤을 굉장히 좋아했던 사람이었다. 늘 멋진 춤은 아니었지만 언제나 혼자서 즐겼다. 이제 그는 더 이상 걷지 못하고 휠체어에 앉아 있다.

병명 루게릭병(amyotrophic lateral sclerosis) — 운동신경세포가 서서히 파괴되어 전신 근육이 위축되는 난치병. 의식은 또렷한 채로 몸만 굳어간다. 모리는 이 병을 '생애 마지막 프로젝트'라고 불렀다.

§ 3졸업 후 나의 이야기

졸업 후 나는 모리 교수님과 연락하지 않았다. 친구들과도, 여자 친구와도, 대학 동기와도 연락이 끊겼다. 꿈은 유명한 피아니스트가 되는 것이었지만, 어둡고 텅 빈 나이트클럽을 전전하며 끊임없이 계약 위반을 당했다.

결국 기자가 되었다. 스포츠 칼럼니스트로 이름을 알렸고, 돈을 벌기 시작했다. 하지만 영혼은 비어있었다. 휴대전화, 디지털시계, 라디오 뉴스 — 한꺼번에 다섯 가지 일을 하며 늘 바빴다.

§ 416년 만의 재회

1995년, ABC '나이트라인'에서 모리 교수님이 소개되었다. 16년 만에 다시 그를 보았다. 휠체어에 앉아, 도우미들의 도움을 받아 몸을 움직여야 하는 사람. 하지만 그는 '절망'이라는 말을 거부했다.

그는 아이디어의 피뢰침이 되었다. 메모지와 봉투에 떠오르는 생각들을 적어 나갔다.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이 있음을 인정하라." "과거를 부인하거나 버리지 말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라." "타인을 용서하는 법을 배워라."

§ 5수업의 커리큘럼

수업은 화요일마다 교수님 댁에서 이루어졌다. 주제는 '인생의 의미'였다. 성적 평가는 없었지만 매주 구두시험이 있었다. 사랑, 일, 공동체, 가족, 나이 든다는 것, 용서, 후회, 감정, 결혼, 죽음.

맨 마지막 수업은 아주 짧았다. 겨우 몇 마디 말로 끝났다. 졸업식 대신 장례식이 치러졌다. 하지만 이것은 진짜 졸업이었다 — 삶에 대한 졸업.